2022

 

2022.04.07 윤기

취한 상태에서 서툰 피아노 소리를 듣고 악기점으로 감.

정국을 다시 만나게 된다. ( 윤기 O )

 

어린 시절의 악몽. 그곳에서 들었던 소리 같았다.
다음 순간 나는 달리고 있었다.
내 의지가 아니라 내 몸이 저절로 뒤를 돌아 악기점을 향해 뛰었다.
왠지 수없이 반복해온 일인 듯한 기분이 들었다.
무언지 모르지만 절실한 일을 잊고 있었던 기분이었다.
유리창이 부서진 악기점. 피아노 앞에 누군가 앉아 있었다.
몇 년이 지났지만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울고 있었다. 주먹을 꽉 쥐었다.
돌아서 갈 생각이었는데 나도 모르게 다가갔다.
그러곤 틀린 음을 짚어주었다.
정국이 고개를 돌려 올려다봤다. '형.'
고등학교를 때려치운 후 처음 만나는 것이었다.

 

 

 

2022.04.11 정국

* 웹툰 스토리 연결됨

 

길거리에서 만난 불량배들에게 일부러 부딪혀서 두드려 맞았다.

계부와 의붓형에게 평소 존재에 대해 무시받고 살았다는 것을 생각한다.

공사장 옥상으로 올라가 난간위에서 두 손을 벌리고 걷는다.

( 정국 LVE )

 

공사장 옥상으로 올라갔다. 밤의 도시가 무시무시한 색깔로 뻗어 있었다.
난간 위에 올라가 두 손을 벌리고 걸었다. 한 순간 다리가 휘청하면서 균형을 잃을 뻔했다. 
한 걸음이면 죽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죽으면 다 끝일 텐데.
누구도 내가 없어졌다고 슬퍼하지 않을 텐데.

 

 

 

2022.04.11 남준

호석이 태형의 등에 있는 피멍을 발견함.

태형이 그래피티 하다가 경찰에 잡혀간 것을 남준이 빼내왔다.

( 남준 V )

 

트레일러 박스에 매달아놓은 낮은 조도의 불빛 아래 순간적으로 피멍이 든 등이 보였다.
호석이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태형은 새 티셔츠를 입고 지저분한 거울에 자신을 비춰봤다. 그러곤 웃었다.
"이 녀석 그래피티인지 한다고 설치다 경찰서에 잡혀간 거 빼내오느라 늦었어요."
나는 태형을 쥐어박는 시늉을 했고 태형도 과장되게 미안한 척을 했다.
트레일러 구석에 앉아 있던 윤기형이 느릿느릿 다가오더니 태형의 어깨를 툭 쳤다.

 

 

 

2022.04.11 석진

혼자 바다에 찾아가 2년 10개월 전을 회상한다.

차를 운전해서 학교를 지나 남준이 일하는 주유소를 찾아간다.

 

셔터를 누르자 눈 앞의 풍경이 깜빡이며 2년 10개월 전의 그날이 한 순간 타나났다가는 사라졌다.
그날 우리는 나란히 이 바다 앞에 앉아 있었다.
지치고 가진 것 없고 막막했지만 함께였다.
학교를 뒤로 하고 몇 개의 교차로를 지나고 몇 번의 좌회전과 우회전을 했다.
저만치 남준이 일하는 주유소의 불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22.05.22 태형

 

2022.05.22
태형 2 V
형이 전화를 받으면서 뒤쳐지는 걸 본 건 소나무 숲을 지나고 있을 때였다.
요즘 들어 그런 일이 많았다.
다른 사람들이 듣지 못하도록 멀리 떨어져서 전화를 했다.
나는 일부러 걸음을 늦추다가는 바다 쪽으로 몸을 감췄다.
형은 나를 보지 못하고 지나쳐갔다.
"저보다 한 살밖에 안 어리잖아요. 아니, 저도 별로 상관은 안 해요. 어차피 제가 책임져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알아서 하겠죠."
 
무언가 차가운 것이 등줄기를 타고 내려갔다.
세상 모든 것이 와장창 무너지는 것 같았다. 깊은 바다 속에 혼자 둥둥 떠 있는 것 같았다.
두렵고 무서웠다. 비참하고 초라했다. 화가 났다. 화가 나서 참을 수가 없었다.
무슨 일이든 저지르고 싶었다. 부수고 때리고 엉망진창이 되고 싶었다.
항상 두려웠다. 내게도 아버지의 피가 흘렀다.
폭력성이 내재돼 있을지도 모른다 생각했다.
무언가가 꼭꼭 싸매놓았던 방어막을 뚫고 나오는 것 같았다.

 

 

남준 페어 U
2022.05.22
 
"겨우 한 살 차이에요. 아니, 누가 그렇대요. 제가 형이죠. 알아요. 그런데 언제까지 어린애 아니잖아요. 이젠 좀 알아서 할 때도 되지 않았냐는 거죠. 알았어요. 알았다고요. 아니, 화 내는 거 아니에요. 죄송해요."
 
 전화를 끊고 바닥을 내려다봤다. 미지근한 바닷바람이 소나무 숲을 휩쓸고 지나갔다. 가슴 속이 꽉 막혀 터질것 같았다.
모래와 흙이 반쯤 섞인 바닥에는 개미들이 줄을 지어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누군가 물리적, 상징적 의미 모두에서 나보다 훨씬 거대한 존재가 보면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왜 가고 있는지 결국 어떻게 될 것인지가 다 보일까.
 
 부모님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동생이 걱정되징 ㅏㄶ는 것이 아니다.
할 수 있다면 외면하고 싶지만 나는 어쩔 수 없이 나일 뿐이어서 분명 그럴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발버둥치는 것이, 화내고, 답답해 하고, 벗어나고 싶어하는 것이 무슨 의미일가.
 
 저만치 나처럼 못박힌 듯 서 있는 뒷모습이 보였다. 정국이었다.
언젠가 정국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형 같은 어른이 되고 싶어요.' 그때 나는 말하지 못했다.
나는 그렇게 좋은 어른이 아니라고, 아니, 어른도 아니라고.
그때는 그렇게 이야기 하는게 잔인하게 느껴졌다. 
마땅히 받았어야 하는 믿음과 관심, 애정을 받지 못한 어린 친구에게 나이를 먹는다고, 키가 큰다고, 좀 더 산다고 어른이 되는 건 아니라고 말할 수 없었다. 
정국의 미래는 나의 것보다 조금 더 친절하기를 바라지만 그 과정에서 내가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약속할 수는 없었다.
다가가 어깨에 팔을 둘렀다. 정국이 눈을 들어 나를 바라봤다.
 
 
정국 your 트윗
2022.05.22
 
몸이 붕 떴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딱딱한 바닥이었다.
한동안은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온몸이 참을 수없이 무거워서 눈꺼풀조차 들어 올릴 수 없었다.
침을 삼킬 수도 숨을 쉴 수도 없었다.
의식이 흩어지면서 점차 주위가 희미해졌다.
 
그러다가 무언가에 놀란 듯 온몸이 발작적으로 요동쳤다.
어딘지 특정할 수 없는 통증과 갈증 속에서 나도 모르게 눈을 떴다.
모래가 가득 들어간 듯 껄끄러운 시야 너머로 무언가 아른거렸다.
불빛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밝고 커다랗고 희미했다.
움직이지 않고 허공에 떠 있었다.
한참을 보고 있자 그것은 점차 확실한 형태를 띠어갔다.
달이었다.
 
고개가 뒤로 꺾였는지 세계가 뒤집혀 있었다.
그 세계에 달도 거꾸로 걸려 있었다.
숨을 쉬려 기침을 하려 했지만 움직여지지가 않았다.
그러곤 한기가 찾아왔다. 무서웠다.
입을 달싹거렸지만 아무것도 말이 돼 나오지 않았다.
눈을 감지도 않았는데 앞이 점점 어두워졌다.
멀어지는 의식 속에서 누군가 말을 걸었다.
 
"사는 게 죽는 것보다 더 고통스러울 텐데, 그래도 살고 싶어?"